| 캐릭터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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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길어지는 따뜻한 봄날이다. 명정의 마당엔 꽃이 만발했다.
수수는 책상에 엎드려 그림붓을 쥐고 있었고, 볼엔 황갈색 물감이 묻어 있었다. 한참을 그리던 수수는 마침내 허리를 피곤 자신의 대작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종이 위엔 청색, 남색, 홍갈색 물감이 뒤섞여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따뜻해 보였다. 수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뛰어갔다. 치맛자락이 일으킨 바람에 종잇장도 펄럭이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양양! 양양——」
그 얇은 종이는 어느새 양양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수수는 두 손으로 탁자를 짚고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뭐 그렸는지 알아볼 수 있겠어?」
양양은 한참을 보더니 손끝으로 오른쪽의 금빛 덩어리를 만지고 왼쪽의 하얀 덩어리를 만지며 말했다. 「아마도... 같이 붙어있는 작은 새 두 마리인 것 같아.」
수수의 눈이 반짝이며 책상을 탁 치고선 얘기했다. 「맞아! 바로 새야! 어른들의 눈이 이상한 게 분명해, 계속 병아리라고 하잖아!」
「병아리가 아니야.」 양양은 화지를 평평하게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았다. 「병아리의 꼬리는 아래로 쳐져 있지만, 이건 올라가 있어.」
「그치그치!」 수수는 양양을 높이 들어 올려 한 바퀴 돌리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너만 알아본다니까!」
양양은 언니의 칭찬에 우쭐해하지 않고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오른쪽의 연한 금빛 새를 가리켰다. 「이건 언니야?」
「응! 오른쪽은 나고, 왼쪽은 너야.」 수수는 가까이 다가오며 그림붓 끝으로 왼쪽의 눈처럼 하얀 새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이거 봐, 작고 귀여운 게, 너랑 똑같잖아.」
그 시절의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창밖엔 온통 새로 핀 꽃들이 가득했고, 분홍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꽃들이 푸른 잎을 가릴 정도로 많이 피어있다. 부는 바람에 떨어진 꽃잎은 탁자에, 종이에, 그리고 자매의 머리카락 끝에 떨어졌다. 마당은 내리쬐는 햇살에 벌꿀색으로 물들였고, 처마 밑에서는 새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맑고 가볍게 노래했다. 새소리는 금 연주 소리와 어우러져 아득하게 퍼져나갔다. 수수는 이런 풍경 속에서 책상에 엎드려 게으름을 피우거나, 복도에 앉아 종이를 높이 들고 햇빛에 비친 색채가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시간이 참 느리게 흘렀다. 처마 밑의 빛과 그림자가 조금씩 이동하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다 지나갔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헤어진 지 수십 개의 봄날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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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된 후, 마당은 찜통에 갇힌 듯 답답했다.
매미 소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울려 퍼졌고, 점점 커지는 울음소리에 처마 밑의 연꽃조차 수수의 기분과 비슷하게 시들었다. 그녀는 창틀에 엎드려 햇볕에 의해 하얗게 그을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양양은 뒤에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 곡 하나를 일고여덟 번 반복해서 연주하며 연습했다. 음악 소리가 열기에 말랑말랑해졌고, 수수는 한참을 듣다가 이곳에 더 머물렀다가는 뇌도 그 금 소리처럼 녹아내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언니, 어디 가려고?」 수수가 몸을 뒤척이자 양양의 손도 함께 멈췄다.
「강가에 갈래.」 문턱을 넘어선 수수는 동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고, 긴 머리가 어깨 너머로 흔들거렸다. 「거긴 바람이 불잖아, 집에 있으니까 답답해 죽겠어.」
「밖은 햇빛이 너무 강한데...」
「햇빛에 안 죽어!」 목소리는 이미 마당 담장 모퉁이에서 들려왔다.
강둑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두 골목만 지나면 됐다. 수수는 빨리 걸으며, 손에 쥔 접선으로 파닥파닥 손바닥을 쳤다. 강둑에 도착하자마자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은은한 습기와 시원함이 느껴지면서, 물과 풀의 달콤한 향기까지 밀려왔다. 그곳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근처 노점에서 중년 남자가 주판을 튕기고 있었는데, 타닥타닥 주판알 소리와 입으로 숫자를 하나씩 읽는 소리가 들렸다. 수수는 턱을 괴고 한참을 보다가 참지 못해 두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주판이 자리를 옮겼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알이 위아래로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넋을 잃고 무의식적으로 따라 세며, 입술도 같이 가볍게 움직였다.
그 사장님이 마지막 알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을 때, 밝은 눈과 마주치자 깜짝 놀랐다. 「뉘집 아이야?」
「유 사장님, 총 327필 맞죠?」 수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먼저 숫자를 말했다. 사장님은 고개를 숙여 장부를 보고 다시 그녀를 보고선, 수염 밑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내 주판을 따라 센 거야?」
「따라 셀 필요 없어요. 사장님이 숫자를 읽을 때 제가 암산을 했거든요.」 수수는 히죽히죽 웃으며 전혀 겁내지 않았다. 「앞의 그 찻잎은 106근 반이죠, 맞죠? 방금 거기서 들었어요.」
사장님은 주판을 책상 위에 놓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너... 내 가게에 와서 일해 보지 않을래?」
「월급은 얼마 주실 건데요?」
수수의 질문에 옆에 있던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다. 사장님도 웃으며 부챗살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꼬마 사장님, 여기서 장난 치지 말고, 저리 가렴.」
수수도 화내지 않고 다시 부채를 흔들며 옆에 있는 약재 노점으로 갔다. 노점상에는 수로로 운반된 약재가 가득했고, 수수는 호기심에 물었다. 「육로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나요?」 노점상은 그녀에게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빠르긴 하지만 오는 길에 흔들릴 수 있거든. 약재는 흔들림을 견디지 못해, 이게 부서지면 돈이 안 되니까.」
수수는 약재를 코 밑에 대고 냄새를 맡은 후 조심스럽게 다시 내려놓았다. 수로로 7일, 육로로 3일, 하지만 부서지면 본전의 절반 이상을 잃게 되므로 시간을 더 들이더라도 화물의 상태를 보장하는 건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해가 서서히 지고 강둑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마지막 몇 척의 화물선이 밧줄을 풀고, 돛은 저녁 바람에 부풀어 올라, 그림자가 부서진 금빛이 가득한 수면 위로 천천히 멀어졌다.
수수는 돌계단에 앉아 접선을 흔들던 손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 배들을 바라보았다. 여울을 지나, 강의 중심을 지나 마침내 점차 낮아져 하늘가의 작은 점이 되는 것을 보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무도 그녀에게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그 배들에는 식량, 천, 약재가 실려 있었고, 북쪽, 남쪽, 산속, 물가에서 온 것들이었으며, 그것들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그녀가 아직 가보지 못한 먼 곳으로 갈 것이다.
언젠가 나도 그 배에 탈 거야. 손에 주문서를 쥐고 뱃머리에 설 거야.
수수는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일어나 치마의 먼지를 털었다. 돌계단에는 아직 햇살의 따뜻함이 조금 남아 있었고, 그녀는 일어나 그 강을 돌아보았다. 끝없는 야경 속에서 드문드문 불빛이 수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바라는... 태평한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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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명정, 바람이 마른 낙엽을 창살에 붙였다 떼어내며, 마치 누군가 낡은 책을 천천히 넘기는 듯했다.
양양은 행정부대 대원이 되기 위해 금주로 떠나려 한다. 이 일이 결정된 지 반 개월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겉으로는 말하지 않고 각자 바쁘게 움직였다. 마치 그녀가 떠나기 전에 꼭 끝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수수는 방에서 동생의 짐을 싸는 것을 도왔다. 녹나무 상자는 반나절 넘게 열려 있었고, 상자 안에는 작년에 말린 쑥이 깔려 있어 여전히 쌉싸름한 향이 났다. 그녀는 양양의 옷을 하나씩 털어내고 순서대로 꼭꼭 눌러 접었다. 창밖의 벌레는 가을이 오는 것을 아쉬워하듯 울음을 내다 말다 했다.
녹나무 향이 섞인 가을 햇살이 그녀의 손등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대청의 기둥을 보았다.
기둥에는 무릎 높이부터 그녀의 귀 옆까지 가로로 새겨진 흔적들이 있었다. 가장 낮은 두 개의 흔적은 양양의 것으로, 일곱 살,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쪼그려 앉아 양양을 위해 재어준 것이었다. 칼자국이 아주 얕은 건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수수는 그해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양양은 아직 잘 서지 못해 기둥을 잡아야 했지만, 어린아이가 유난히 얌전해 수수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자랑스러움을 느꼈었다—— 「이 아이가 바로 내 동생이야.」
그 위로는 자신의 흔적이 있었는데, 열네 살 때 새겨진 것이었다. 그해 그녀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며 다른 곳으로 의술을 배우러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버지는 안 된다고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이 기둥 앞에 반나절 동안 서 있게 했다. 그녀는 기둥에 새겨진 흔적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수수는 자신이 빨리 자라는 것 같기도, 아주 느리게 자라는 것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키는 많이 컸지만, 세상 물정에 대해서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양양의 흔적은 위로 갈수록 촘촘해졌다. 작년 섣달에 새긴 흔적은 양양이 직접 새긴 것으로, 자신보다 반 마디 정도 작았다. 올해 봄이 지난 후, 양양은 자신과 키가 거의 비슷해졌다.
마당 밖에서 드문드문 새소리가 들려왔다. 수수는 문을 밀고 나갔다. 가을 햇살이 얼굴에 부딪히며 약간의 온기로 감싸안았다. 처마 밑에서 등이 파란 새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오르며 두어 번 날개를 퍼덕이자, 노란 잎 몇 장이 바스락거리며 떨어졌다. 양양이 마당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양양은 계단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언니가 복도에 서 있는 것을 보곤 다가왔다. 수수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언제 출발해?」
「내일 아침.」
수수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다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안에서 맴돌다 다시 삼켰다. 그녀는 손을 뻗어 양양의 옷깃을 정리해 주었다. 양양은 가만히 있었다. 언니의 손이 거두어지자, 양양은 그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다시 돌아올 거야.」
수수는 미소를 지었다. 「가. 금주는 바람이 세니까 몸조심하고.」
양양은 언니의 말에 대답했고, 마침 부모님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빨리 걷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걷는 게, 마치 이미 행정부대 대원 노릇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수수는 다시 혼자 복도에 남았다. 그 등이 파란 작은 새가 언제 돌아왔는지 다시 그 나뭇가지에 앉아 고개를 들고 두 번 울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계단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워 들며 어느 책에 끼워야 할지 생각하다가, 어디에 끼우든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가을은 항상 지나갈 테니까.
수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담장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금주 방향에서 전해오는 메아리와도 같았다—— 그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한참을 듣고 나서야 마침내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녹나무 상자는 여전히 열려진 채로, 그녀가 돌아가 닫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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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몽주는 눈이 자주 내리지 않지만, 올해는 반나절 만에 부드러운 눈이 호수를 덮었다. 뱃사공은 노를 천천히 저으며 방해하지 않으려 입을 다물었다.
수수는 뱃머리에 앉아 무릎 위에 백자호를 올려놓았다. 주전자 주둥이에선 하얀 김이 나오자마자 흩어졌다. 그녀는 맞은편 사람의 찻잔에 차를 따르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찻물이 잔을 채우는 소리는 매우 작았지만, 노가 물을 젓는 소리는 덮기엔 적당했다.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상대방은 양보하려 하지 않았고, 이 대치는 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오늘 아침 수수는 사람을 보내 일을 잠시 미루고 호수에서 만나자고 청했다. 상대방은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쯤에야 회색 피풍의를 덮고 배에 올랐다. 들어올 때도 그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작은 배는 호수 중심을 향해 흘러갔다. 호수 위에는 옅은 안개가 끼었고, 먼 곳의 산 그림자가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온 한가롭고 여유로운 상황이니, 자연스레 수수는 장부 이야기를 미뤄두었다. 항상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그녀는 먼저 고향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향의 물은 맑아서 바닥의 자갈이 하나하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 어릴 적 강가에서 상단이 짐을 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포대가 그녀보다 몇 자나 높게 쌓여 있었고, 어른들이 강가에서 장부를 계산하는데 주판 소리가 맑고 매력적이었다는 이야기. 집을 떠나던 해에 비가 보슬보슬 내렸는데, 몽롱한 빗줄기 너머로 배웅 나온 부모님의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 아득한 이야기들이 작은 배를 타고 흔들거리며 여러 해를 지나 몽주의 이 하얀 눈으로 덮인 호수 위에 닿았다.
「저는 더 많은 것을 볼수록 이 세상이 더 사랑스럽게만 느껴져요.」 수수는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저는 그 좋은 것들이 가야 할 곳으로 가기를 바라요. 식량은 기근이 든 곳으로, 약재는 병상으로, 옷감은 가난한 집으로. 하지만, 그 물건들이 스스로 필요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지 않으니 누군가는 그것들을 연결해야 하는 법이죠. 저는 그저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상대방은 말을 잇지 않고 찻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돌려 호수를 바라보았다. 수수는 잔의 가장자리에 얹은 상대방의 손가락이 꽉 쥐어졌다 풀렸다, 풀렸다 또 다시 꽉 쥐어지는 것을 보았다. 상대방은 결국 가벼운 한숨만 내쉬었다.
배가 기슭에 닿았을 때서야 눈이 조금 더 굵어진 것을 느꼈다. 몽주의 눈은 가늘고 부드러워 마치 누군가의 손에서 떨어진 솜털 같았다. 상대방은 돌계단에 올라서서 뒤돌아 그녀를 쳐다보고는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을 남긴 후 우산을 펴고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천천히 눈 속으로 사라진 회색빛 그림자를 바라보는 수수는 이 일에 기회가 열렸음을 알아챘다.
수수는 물가에 잠시 서 있다가 떠났다. 수수가 머무는 곳은 호수 동쪽에 있었고, 문을 들어설 때 신발 밑창은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는 화로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불을 피웠고, 몇 번 불꽃이 튀고 나서야 타오르기 시작했다. 열기가 숯에서 스며 나와 먼저 손등을 따뜻하게 하고 점점 뺨 위로 올라갔다. 창밖에는 눈이 소리 없이 내렸고, 그녀는 화로의 가장자리에 기대어 앉았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꿈을 꿨다. 꿈속은 고향의 한여름이었다. 햇살은 눈부셨고, 집 안에는 나무 향기가 났다. 상단은 벽돌 모양으로 굳힌 차를 내리고, 선원은 소금 포대를 메고, 사장님이 계산대 위에 동전 꿰미를 던져 울리는 쨍그랑거리는 소리는 악기 소리보다 더 듣기 좋았다. 어른 허리 높이밖에 안 되는 어린 수수는 장부방 창턱 아래 서서 발돋움하여 창틀에 엎드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넋을 잃고 보느라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그저 그 두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상인의 도리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모두 이 작은 창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르신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고 웃으며 붓꽂이에서 낡은 붓을 꺼내 창문 밖으로 건네주었다. 수수는 손을 뻗어 그 붓을 받았다. 붓은 그녀의 손가락보다 굵었고, 묵직했다. 그녀는 꽉 쥐고 놓지 않으려 했다. 창턱 아래에서 천천히 일어서는데 동전 소리, 말 방울 소리, 점원의 외침 소리, 선원의 호각 소리가 모두 밀려오면서 이 어린 꼬마를 둘러쌌다. 그녀는 웃었다. 그저 행복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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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지나온 사계절
☑ 호감도 Lv.5 달성 후 해제
<본문>
밤이 찾아 온 현방 지계, 하늘가에선 땅거미가 한 치 한 치 내려앉고 있었다.
수수는 성 안의 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청석판을 밟는 걸음걸이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아직 다 흩어지지 않은 노을빛이 온 거리를 옅은 귤색으로 물들였고, 처마 끝에 걸린 등불은 켜지지 않은 채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만 있었다. 노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들락날락하며 널판지를 나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얘기는 저녁 바람에 흩어져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수수는 그 빛과 그림자 사이를 지나갔고, 그림자가 아주 길게 늘어졌다.
조월회가 열릴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길가 노점의 문 앞에는 수십 필의 알록달록한 비단이 쌓여 있었고, 점원들은 들락날락하며 짐을 날랐다. 문틀에 기대어 숫자를 읊조리고 있는 사장님은 기분 좋아 보였다. 아이들 몇 명이 수수 곁을 뛰어 지나가다가, 모퉁이를 지날 때 김이 모락모락 나며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기관 화로 몇 개를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반짝이며 한참 동안 군침을 삼키다가, 끝내 아쉬운 듯 발길을 돌렸다.
수수는 턱을 괴고 한참을 살펴보았다. 「금하 완자」를 파는 노점이었는데, 윤기가 흐르고 부드러우며 쫀득쫀득한 식감인, 푸른 파가 곁들여진 향긋한 고기완자가 찜통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절로 식욕이 돋았다. 수수는 손을 뻗어 가리켰다.
「금하 완자 한 판 주세요.」
노점 사장님은 고개를 들어, 눈웃음이 가득한 젊은 아가씨가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수수는 포장된 금하 완자를 받아 들고 돈을 지불한 뒤, 클램 코인을 더 건넸다.
「방금 뛰어간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세요.」 그녀는 봉지를 들어 올리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샀는지는 말하지 마시고요.」
사장님은 어리둥절했다. 그 돈은 탁자 위에 남겨져 있었고, 그림자는 이미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찻집과 술집의 등불이 하나둘씩 켜지자, 따뜻한 노란빛이 창살 사이로 새어 나와 바닥에 깔렸다. 수수는 그 빛을 밟으며 걸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완자 봉지를 손에 들고선, 바람이 귓가의 잔머리를 얼굴로 날려도 손을 뻗어 쓸어 올리지 않았다.
오늘은 외출을 서두르느라 물의 부채도 챙기지 않았다.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미소를 지었다. 부채를 움직일 일이 본래 많지 않았고, 정말 중요한 풍랑은 이미 수성전 며칠 동안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 눈앞의 나날들은 아주 평범했다. 거리를 한가롭게 거닐 시간이 있고, 멈춰 서서 사람들이 지극히 평범한 황혼을 어떻게 보내는지 지켜볼 시간이 있을 정도로 평범했다.
발걸음이 어느새 빨라졌다.
앞쪽 좁은 골목을 지나, 작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도착한다. 동생이 그곳에 있고, 그 사람도 그곳에 있다. 그녀는 그곳에 지금쯤 등불이 켜졌는지, 이 음식이 그들 입에 맞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일찍이 명정의 봄과 여름을 느꼈다. 수면이 반짝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나날들. 어린 수수는 시끌벅적한 사람들 속을 달리며 바람에 긴 머리를 흩날렸다. 그녀의 마음과 눈 속에는 오직 그 생동감 넘치는,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인간 세상만 가득했다. 또한 몽주의 가을과 겨울도 느꼈다. 호수 가득 안개 낀 아침에 배를 띄워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눈이 내리는 저녁이면 홀로 창가에 앉았다. 화로의 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가운데, 그녀는 손에 멀리서 온 가족의 편지를 쥐고는 먹물이 뜨거운 온기에 번질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지금은 또 그 저녁에 이르렀다. 발밑은 현방 지계의 길이고, 손에는 소중한 사람에게 줄 물건이 쥐여져 있었다. 수수는 봉지를 다른 손으로 바꿔 들었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긴 거리 저편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매 자락을 펄럭였고, 거리에는 몽롱하고 어수선한 등불 그림자가 가득했지만,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거의 다 왔다. 다리가 바로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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